소문비 좋아서 쓰는 글들 / 암호는 공지 참고

부재(不在)
그곳에 있지 아니함.









경식이와 연락이 끊긴 지도 몇 년. 경식이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끊길 줄은 몰랐다. 항상 먼저 온톡을 걸어주었으니 내가 바빠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겠지. 안일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경식이를 잊은 것 같다가도, 일상의 작은 틈이 생기면 어김없이 경식이가 떠오른다. 예컨대 지금,



삑-
"3,500원입니다."



늦은 저녁 들른 편의점. 알바생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그래, 나도 저 자리에 있었지. 그땐 경식이도 있었고.


'잘 지내려나...'





맥주캔을 사들고 나온 세평은 집 근처 벤치에 털썩 앉아 캔을 열었다. 시원한 마찰음이 세평의 기분을 잠시나마 씻겨주는 것 같았다.

크게 몇 모금 들이키고는 숨을 내쉬었다. 연락, 해볼까... 망설임도 잠시 세평은 핸드폰을 꺼냈다. 오랜만의 안부도 못 물을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으니까.


왠지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몇 년 전 어린 자신의 눈을 한 청년은 조심스레 타자를 두들겼다.



시간도 시간이고, 바로 읽을 리는 없으니 기다려 보자. 세평은 남은 맥주를 비우며 잠시 옛날 감상에 빠졌다.


실수로 보낸 온톡, 실없이 주고받던 장난들.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던 마음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첫 만남...

여주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고민하던 나날들이 떠올라 괜시리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서러운 기분일까.

세평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정의 내리지 못했다. 여주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마음으로 좋아하는 건지. 연락이 끊긴 뒤 원망은 했지만 미워할 순 없었다. 서로 닿지 않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세평의 마음에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미련하네.'


마지막 한 모금을 털어 넣고 확인한 온톡에는 여전히 1이라는 숫자가 남아 있었다.
그래. 몇 년 만에, 그것도 이런 시간에 보낸 연락인데 설레발이지. 포기하자.
남아있던 미련을 지워버리고 일어나려는 순간,

'온톡-'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설마,


아닐 거야.


그래도,


혹시...



찰나의 순간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핸드폰을 열어 보니


친구 놈 민수의 게임 초대 메시지였다.


세평은 온톡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하자면서 내심 기대한 거냐, 문세평. 온톡 하나에 휘말리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어째선지 이제야 정말 몇 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역설적으로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방 깊숙한 곳에 항상 들고 다니던 헤드폰을 꺼내 머리에 쓰고 민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날 밤 세평은 오랜만에 기타를 꺼내었고, 헤드폰을 끼고 가사를 쓰며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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