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비 좋아서 쓰는 글들 / 암호는 공지 참고

 
뽀뽀해요! 뽀뽀 안 해요?
 
 
https://youtu.be/yw4N_GoIA-k?si=qG83tdR9wo2cv6KR

 

일단은 시나리오 이후의 이야기지만... 관련 내용은 없습니다.
스포일러X
(아주아주)간접적인 언급O



 
 
 

 
지금 도원은 심각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도 틀지 않고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하성은 태평하다. 어제 진탕 술을 마신 뒤 점심때가 다 되도록 일어나지 않고 있다.
 
도원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하성이와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 집에서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담소를 나누며 잔을 비워갔다.


 
"오랜만에 마시는 건데 괜찮겠어? 천천히 먹어도 되는데."
"날 너무 나약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마시자고 한 건데 뭘~ 자, 얼른 건배~!"

하성이 돌아온 후 첫 음주를 포함해 두 사람은 종종 같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하성과 도원 모두 음주를 사랑해 마지않는 편은 아니기에 한 달에 한 번이면 그것도 많은 숫자였다.

"하성이 술 처음 먹을 때 생각난다. 한 입 먹고 이걸 무슨 맛으로 먹냐고 했었잖아."
"맞아, 근데 이상하게 세 번째 잔부터는 괜찮더라고? 문제는 그 뒤로 기억이 없다는 건데…"

그렇지, 맛없는 술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건 취했다는 반증이다. 하성의 말대로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매번 필름이 끊긴다는 거였다. 부어라 마셔라 한 것이 아니고, 그냥 하성이 술에 약한 거였다. 도원도 처음에는 걱정하며 술을 못 먹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주 가끔, 그것도 자신과 같이 마시는 것이니 조금 풀어주기로 했다.


평소와 같이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도원은 하성의 눈을 보았다. 이제는 선명하게 노란빛을 띠는 눈동자. 하성이 다시 돌아온 뒤로 이제는 시간이 꽤 흘렀지만 도원은 여전히 하성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하성의 밝은 눈은 어느새 나른해져 있었다. 도원이 하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하성은 언제나처럼 옆으로 와 도원을 끌어안았다.

"우리 귀여운 홍도~ 이 누나가 많이 좋아한다~?"
"하성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괜찮아?"
"응? 나 하-나도 안 취했는데? 무슨 소리지?"

익숙한 패턴의 대화. 도원은 이제 하성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다. 아마 곧 있으면…



그래, 이거. 평소대로라면 이제 하성은 도원의 볼에 몇 번 더 입을 맞춘 뒤에 방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잠시 고민하던 도원은 하성에게 물었다.

"하성아, 저번 달에 술 먹었을 때 기억 나? 그때 했던 대화 말이야."
"아~ 뽀뽀했던 거 말하는 건가?"
"그 얘기만은 아니었지만… 기억하는구나. 응, 그거."
"도원아, 눈치가 이렇게 없니? 사람이 왜 사람 볼에 뽀뽀를 하겠어."
"응?"
"하고 싶으니까 그렇지~!"

이미 거하게 취한 하성은 벌떡 일어나더니 도원의 반대쪽 볼에도 쪽 소리를 내고는 비틀비틀 방으로 들어갔다.
결국 같은 엔딩. 도원은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이렇게 술을 먹을 때 나오는 하성의 행동은 도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다. (더구나 한 달 전 술자리에서는 서로에 대한 속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냈었다. 물론 둘 다 아주 조심스러웠고 하성은 그 마저도 기억을 못 하지만) 도원은 이전에도 하성을 아꼈으나 그때는 그저 친한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었다. 자신의 동생 다원이를 대하는 것처럼. 하지만 미국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도원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아주 조용히 찾아와 도원은 이게 무슨 마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상황이 도와주지 않을 걸 수도 있겠지만 이제 도원은 확신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은 이전과 같은 것이 아니다. 바로 하성과 같은 형태의 마음이다.


 
어느새 일어난 하성이 하품을 하며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
"홍도, 뭐 해? 멍때리는 거야?"
"아, 어? 응…"

하성은 태평하게 리모콘을 들어 티비를 켜고 볼만한 채널을 찾아 헤맸다. 이렇게 다음 날이 되면 하성은 어김없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전날 밤 일을 물으면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의 안부를 물은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모든 행동이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편한 집에서 지내게 되니 신나서, 기분이 좋아서 보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니 도원도 이젠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하성아, 어제 기억 나?"
"아니~?"
"하성이가 어제…… 음, 아니다."
"…? 홍도,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빤히 바라보는 하성의 시선에 도원은 고개를 돌렸다. 언젠간 말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잔뜩 엉킨 단어들이 속에서 돌기만 했다.
예능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계속 느껴지는 하성의 시선. 도원은 천천히 말을 고르며 입을 뗐다.

"음… 하성이 네가 어제, "
"응, 어제?"
"나한테 좋아한다고 하면서 볼에… 뽀뽀를 했거든."
"내… 내가?"
"응, 그리고…"

당황한 하성이 음이탈을 냈다. 기억에 없는 자신의 행동을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고백에 가까운 행동을 전해 들으니 사고가 정지되었다. 도원은 하성의 기색을 살폈다. 표정을 보니 매번 그랬다는 말은 못 하겠구나, 머릿속에 떠다니는 문장들을 조금씩 고쳐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번에도 하성이가 말했거든. 나랑 있으면 즐겁고 편안하다고. 그래서 다시 돌아온 게 너무 기쁘고, 앞으로도 같이 있고 싶다고.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
"처음엔 네가 그냥 신나서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구.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떤지도 생각해 봤는데 하성이 네 마음이랑 비슷하더라. 그래서, "

머리카락으로 애써 귀를 가리며 이야기를 듣던 하성은 도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얼핏 보기엔 당찬 걸음이지만 저건 분명 도망이었다.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역시 맨 정신으로 듣기는 어려운 이야기였나, 어느새 분홍빛 얼굴이 된 도원은 소파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하성의 방 문은 조용히 닫혀 아주 고요할 지경이었다. 도원은 그런 문을 응시하다가 괜찮아지면 나오라는 말과 함께 티비 소리를 줄였다. 하성이에게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생각을 정리해 보려던 찰나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하성이의 얼굴이 보였다.

"얘기하던 거 더 해봐."
"어…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서로를 되게 아끼는 것 같아."

실수했다. 이렇게 모호한 단어를 쓰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해할 하성이라는 것을 도원은 아주 잘 안다.
어떤 단어로 다시 말해야 좋을까, 어떻게 말해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내 뜻을 정확히 전할 수 있을까. 조용히 고민하는 사이, 벌컥 문을 열어젖힌 하성이 다시 소파로 걸어 나와 풀썩 앉았다. 난 또 무슨 얘기라고, 당연히 아끼지~ 뭐 그런 말을 그렇게 각 잡고 해. 마치 세상에 태양이 하나라는 사실을 대서특필한 기사를 본 것 같은 반응이었다.
… 정말 이게 아닌데. 마음을 전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거였나? 하성이 다시 품에 안은 곰인형을 가만 내려다보던 도원은 하성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게 아니라, 나도 하성이 너랑 같은 마음이라구."

아까보다 작아진 티비 소리, 고요한 정적. 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도 잠깐, 하성은 무언가 결심한 듯 도원의 어깨를 잡고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 내가 지금 이해를 잘 한 건지 모르겠어서 실행해 보려고 하거든? 근데 천천히 할 거야."
" ……"
"그러니까, 아니다 싶으면 말려."

하성은 그의 말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도원에게 다가갔다.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에 눈빛은 크게 일렁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질 때 도원은 천천히 눈을 감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말리지 않을 듯한 그 표정은 마치 하성이 네가 이해한 게 맞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성은 도원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동시에 도원이 천천히 눈을 떴고, 눈앞의 하성은 눈물을 후두둑 흘리고 있었다.

"거짓말…"
"하성아…?"
"거짓말하지 마…"
"……"
"근데… 거짓말이어도 상관없어. 나는 진심이라고 믿을래."

거짓말. 도원이 가장 못하는 것이자 잘하는 것이었다. 남을 속이진 못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거짓말이라면 몇 번이라도 해 본 사람. 그게 홍도원이라는 사람이었다. 하성은 그런 홍도원을 잘 알았기에 이번에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도원은 이미 하성에게 선의의 거짓말도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하성의 말을 들은 도원은 미안한 표정인지 속상한 표정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는 하성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눈물을 닦아준 볼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고, 하성을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내가 하성이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
"선의의 거짓말 자주 했잖아."
"… 그렇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하성은 힘주어 도원을 안았고, 도원은 하성을 도닥여주었다.

날씨를 전하는 뉴스, 옆집에서 들려오는 화목한 웃음소리. 부지런히 공간을 채우는 생활소음에도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호흡만 들렸다. 품 안에서 웅얼대는 앞으로는 거짓말 안 하겠다는 말, 나도 사랑한다는 말소리는 그들 품에 갇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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