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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님 마을 불꽃 한마당 개최 ()






일주일 전부터 마을 곳곳에는 축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 유난은... 하성은 가게 문을 활짝 열며 현수막을 올려다보았다. 이 작은 마을에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벌써 들뜬 사람들이 다수였다. 하긴, 날씨니 역병이니 하며 미뤄진 지 3년. 이제야 겨우 열리는 축제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님 마을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 이름이 무색하게 소수의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마을 경관도 뛰어나고 살기 좋고 사람도 좋은 동네지만 구석진 곳에 위치한 것이 원인일까. 하지만 주민들은 도란도란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의 분위기를 사랑했다. 외부인의 통장을 탐내는 관광업에도 무관심한지 숙박업도 크게 발달하지 않아 축제가 열려도 타 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만이니까!




바다가 보이는 외진 기차역.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 멈춰 선 기차가 고요해졌을 때, 한 청년이 캐리어를 들고 기차에서 내렸다. 바닷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은 가볍고, 햇살을 받는 피부는 잔뜩 밝아 시원한 인상을 주었다. 짐을 들고 내린 청년이 두리번거리자 그를 발견한 다른 이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홍도원! 일찍 왔네?"
"아, 벌써 와 있었어? 마중 안 나와도 된대도."
"멀리서 손님이 오는데 어떻게 안 나오냐? 가방 하나 줘, 들어줄게. 밥은?"
"고마워. 기차 타기 전에 먹고 와서 아직은 괜찮아."
"다행이다! 사실 오늘부터 좀 바빠질 것 같거든. 축제 준비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더라. 나도 너만 데려다주고 바로 가보려고."
"벌써 시작하는 거야? 아직 좀 남은 줄 알았는데."
"응. 그게, 간만에 여는 축제니까 이장님이 특별히 더 신경 쓰시나 봐. 이제껏 한 것 중에 제일 성대하게 할 거라나 뭐라나... 아, 그래서 말인데 내 자취방은 지내는 동안 편하게 쓰다 가. 축제 준비하는 동안은 본가에서 지낼 것 같아."

두 사람은 짐을 나눠 들고 작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도원의 친구는 도원에게 집 열쇠를 건네주며 어차피 본가는 5분 거리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금세 사라졌다.

"집까지 같이 올라가 주고 싶지만... 이 몸은 바빠서 이만!"

도원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친구의 집으로 올라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친구의 집은 꽤나 깔끔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담하지만 혼자 쓰기엔 충분히 넓은 거실과 작은 침실 하나. 한 명이 지내기 딱 좋은 크기의 집이었다. 본격적인 독립 전 연습 느낌으로 살기 위해 구한 방이라더니 짐도 많지 않아 보였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그것도 깔끔한 집... 도원은 왠지 에어비앤비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간단히 짐을 풀었다.


...

도원은 간단히 정리한 짐들을 한 번 둘러본 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제 뭘 하면 좋지... 있는 거라곤 짐가방과 친구의 자취방뿐. 처음 해보는 무계획 여행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자신의 결정이지만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의문이 들기 전에 도원은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 고작 여행인데 별거 있겠어. 우선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도원은 몸을 일으켰다.




도원은 건물에서 나와 무작정 해변가로 향했다. 바로 근처에는 친구의 집과 같은 빌라들이 몇 채 줄지어있다가, 조금 더 나오니 가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어울리는 해산물 식당부터 조그만 개인 카페, 반지나 팔찌를 만드는 공방들도 보였다. 거리의 가게들을 구경하니, 도원은 마을이 작아 볼 게 없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라 작게 웃었다.

"볼 거 많은데 뭘~"

작게 혼잣말을 하며 길을 건너자, 해변이 보임과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도원은 느긋하고 자유로운 기분에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얼마 만에 맞아보는 바닷바람인지... 무턱대고 온 여행이지만 그래도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고 있으니, 상쾌한 바다 냄새와 함께 달콤한 빵 냄새가 도원의 코를 스쳤다.
꼬르륵,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아기자기한 간판이 달린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점심을 먹은 지도 꽤 지났구나. 도원은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가게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

창가 매대를 정리하던 하성이 손님의 얼굴을 보곤 멈칫했다. 이 동네에서 본 적 없는 얼굴... 외지인이다. 외지인인 걸 제외하더라도 그의 모습은 하성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꽤나 곱상하게 생긴 얼굴. 과장 조금 더해서 햇빛을 맞아본 적이 없는 건지 의구심이 드는 흰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성이 인사를 끝맺지 못하고 손님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는 어색하게 목례를 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렇게 귀엽게 생긴 외지인 손님을 놓칠 순 없다! 특별한 손님인 만큼 그저 그런 빵을 먹일 순 없지, 암. 물론 우리 엄마 아빠가 만든 빵은 다 맛있지만. 하성은 빵집 딸랑구의 영업실력을 뽐내기 위해 손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여행 오셨나 봐요?"
"네, 맞아요. 하하. 티 나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 뵙는 얼굴 같아서요~ 혼자 오신 거예요?"

하성은 속으로 멈추지 않는 제 입을 원망했다. 분명 빵을 추천해 주려고 말을 걸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계속 다른 얘길 하고 있었다. 게다가 뭐? 혼자 왔냐고? 작업 거는 거야 뭐야~!

"아, 네. 친구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혼자 지내다 갈 것 같아요."

도원은 옅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이 마을에 오래 지내셨나 봐요, 여행객을 금방 알아보시네요."
"저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에요. 주민들도 좋은 분들이고 다들 친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몇 살이세요? 저희 또래일 것 같은데."
"스물둘이에요."
"뭐야~ 한 살 차이면 친구죠! 저는 스물 하나예요. 지내는 동안만이라도 말 편하게 할래? 어, 나는 놓는다? 괜찮지?"

도원은 거침없는 하성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렸다. 대책 없다시피 온 여행 첫날부터 이런 재미있는 친구를 만나다니, 앞으로의 시간에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러고 보니 곧 축제 열리는데, 그거 오러 온 거야?"
"아, 그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알고는 있었어. 방을 빌려준 친구가 축제 준비 아르바이트를 하거든."
"그렇구나~ 그때도 친구 바쁘다고 하면 여기로 와. 나랑 같이 가자."
"응? 그래도 돼?"
"그럼~ 어차피 나도 같이 갈 친구 없거든."

하성은 물 흐르듯 거짓말을 흘렸다. 방금까진 동네 사람들이랑 친하다고 해 놓고... 축제에 같이 갈 친구쯤이야 다섯 걸음에 한 명꼴로 만날 수 있었지만 그 사실은 잠시 숨겨두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하성은 이미 자신의 의지로 제 입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긍정을 표하며 그렇게 하겠다는 도원의 대답 뒤로는 드디어 하성의 빵 추천이 이어졌다. 내 입에는 다 맛있는데 너한테는 어떨지 모르겠네, 라는 말에 나도 빵을 좋아하니 추천해 주는 게 있다면 그걸 먹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하성은 방금 갓 구운 애플파이를 추천했다.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이름을 안 알려줬네, 나는 김하성이야! 여기서는 빵집 딸내미라고만 해도 날 찾을 수 있지만,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

하성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보는 이까지 기분 좋아지는, 그늘 없는. 마을에서 사랑받는 미소였다. 도원은 하성의 손을 맞잡아 짧게 악수를 하고 제 이름도 알려주었다. 여행으로 잠깐 온 마을이지만 왠지 좋은 동네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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