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비 좋아서 쓰는 글들 / 암호는 공지 참고

다시 찾은 행복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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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꽃이에요. 누구도 내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어서 무슨 꽃이라고 소개할 수가 없네요, 미안해요. 나중에라도 제 이름을 알게 되면 다시 알려줄게요.
 
저는 지금 어떤 사람의 품에 안겨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어요. 지내던 곳은 조금 척박했지만 그래도 나름 지낼 만했는데... 어디로 가는 걸까요? 태어난 곳을 떠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무섭진 않아요. 이렇게 예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제가 지금껏 본 사람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 같은 소리를 냈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고 싶었지만 늘 실패했답니다.
오늘 제가 본 사람들은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모두가 줄을 맞춰서 제 옆을 지나가고 있었죠. 그중 머리를 높게 묶은 사람 한 명이 길을 되돌아오더니 지금 이렇게 저를 데려가고 있어요! 그 사람도 제 이름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저를 보고 기뻐했어요! 태어난 이후로 기뻐하는 사람의 표정도 처음 봤어요. 오늘은 처음인 게 많은 날이네요! 신나요!
 
이 사람이 가려는 곳에 거의 다 왔나 봐요. 입고 있는 옷이 바뀌었어요! 도착하면 제 집을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옮겨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담겨있는 곳은 저한테 조금 좁은 것 같거든요. 그래도 저를 보며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도 행복해져요! 저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 이런 모습일 거예요.
:D
 
 
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엄청 반가워하는 걸 보니 아끼는 사람인가 봐요. 서로를 꼬옥 안아주는 게 다정해 보여요!
 
 
"홍도~!!"
"어서와 하성아~ 고생했어. 힘들진 않았어?"
"음~ 할 만하긴 한데, 그래도 홍도를 못 보니까 좀 힘든 것 같기도 해. 홍도는?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나도 하성이 없어서 잘 못 지낸 것 같아~"
"히히, 얼른 들어가자. 아! 이거 홍도 주려고 가져왔어."
 
 
저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있어요! 이 사람한테 선물할 생각에 저를 보며 웃었던 걸까요?
 
 
"바빴을 텐데 선물도 가져온 거야? 고마워~ 은방울꽃이네?"
 
 
드디어 제 이름을 알았어요! 저는 은방울꽃이에요!
 
 
"응, 오늘 임무 하다가 보여서 홍도 주려고 가져왔지~ 이따가 같이 화분에 옮겨 주자!"
 
 
 


 
두 사람이 밥을 먹고 저를 큰 집으로 옮겨 줬어요. 저 이제부터 여기에서 사는 건가 봐요! 정말 행복해요.
 
 
이제 밖은 어두워졌어요. 평소 같았으면 고요했을 시간인데... 여긴 바깥보다 조금 밝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계속 들려요. 보이는 건 두 명뿐이지만 네모난 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와요. 밝은 빛도 저 벽에서 나오는 거예요! 신기한 물건이네요!
그런데 두 사람은... 엄청 조용해요. 지금 보니 저를 데려왔던 사람이 잠든 것 같아요. 많이 피곤했나 봐요. 다른 한 사람도 그 옆에 누워 있지만 잠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잠든 사람을 보고... 그냥 계속 보고 있어요. 아, 방금 머리 넘겨줬다. 그리고... 계속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네요. 사람들의 저런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여기는 제가 지내던 곳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마음에 들어요. 작게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공기는 따뜻하고, 밖은 어둡고... 먼저 잠든 사람의 새근거리는 소리도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아요. 조용히 듣고 있으니 저도 점점 잠이 와요.
 
오늘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처음 겪어보지만 행복한 일들이 일어나서 앞으로의 시간도 기대돼요. 아무도 모르게 태어나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줄 알았던 제 생애에 희망이 찾아온 듯한 기분이에요. 이 사람들이 제 세상을 바꾼 거라고요! 저를 행복하게 해 준 이 사람들도 반드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아, 다른 사람도 이제 잠든 모양이에요. 저도 슬슬 자야겠어요. 안녕, 아침에 만나요.